481)연국 복성공 안자(兗國 復聖公 顔子, B.C 521 - B.C 481)
동배향(東配享) 제1위(第一位)
공자의 제자로 춘추 말엽 노(魯)나라 사람이다. 성은 안(顔)이고 이름은 회(回)이며 자가 자연(子淵)이기 때문에 안연(顔淵)으로도 일컬어진다. 노 소공(昭公)21년에 출생하여 애공(哀公) 14년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보다 30세가 적으며, 집안은 청한(淸寒)하였다. 16-7세 때부터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계속하여 공자의 학습 생활을 따랐으며 종신토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안회는 공문제자 중에서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고, 사람됨이 총혜(聰慧)롭고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내향적인 성격으로 침정(沈靜)한 데다가 엄격하고도 근면하였다.
그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덕행수양(德行修養)면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공자는 제자들을 평가하면서 덕행 면에서 안연을 제일로 지목하고 그의 인(仁)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안회는 안분지족(安分知足)으로 자기를 지켰고, 예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명리(名利)에 담박하여 안빈낙도(安貧樂道)하였고, 자신의 장점과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다.
안회는 스승인 공자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줄곧 따랐으며 공자의 말에 맹종하여 일언반구의 어김도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사(早死)하여 공자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이처럼 안회는 전적으로 공자의 학설을 신봉하였고 또 조사하였기 때문에 독창적인 의견이 없어 사상, 학술 면에서 후세에 끼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동한(東漢) 명제(明帝)15년(72)부터 '72제자'에게 제사했는데 안회의 신위를 모든 제자 중 수위(首位)에 놓았으며, 공자에게 시제(時祭)를 올릴 때도 유독 안회만은 배향하였다고 한다. 당태종 정관 2년(628)에 추존하여 선사(先師)라 하였고, 당 현종 개원 27년(739)에 연공( 兗公)에 추봉되었으며, 송 진종 대중상부 2년(1009)에 연국공으로 가봉(加封)되었고 다시 원 지순(至順) 원년(1330)에 연국복성공( 兗國復聖公)으로 가봉되었으며 명 세종 가정 9년(1530)에 복성안자(復聖顔子)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