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국 아성공 맹자(鄒國 亞聖公 孟子, BC 372 - 289)
서배향(西配享) 제2위(第二位)
전국시대 사상가이자 정치가, 교육가로 유가학파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성은 맹(孟), 이름이 가(軻)이며, 자는 자거(子車) 또는 자여(子輿)로 노나라 추읍(鄒邑) 사람이다. 아버지는 맹손격(孟孫激)이고 어머니는 장( )씨라고 하나 선계가 분명치 않다.
그가 40세를 전후했을 때 추목공은 그를 발탁하였다. 그러나 당시 추의 정치는 극히 혼란하여 맹자는 자기 나라에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칠 수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는 곧 추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일생동안 왕도정치로써 제, 량, 노, 추, 등, 설, 송 등의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유세하였고, 제선왕의 공경이 되기도 하였다.
맹자가 평생 목표로 삼았던 것은 사상 면에서는 유학을 드높이는 것이었고 정치면에서는 왕도정치의 실천 곧 유가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상 면에서 두드러진 점은 성선설(性善說)이다. 『맹자』 7장은 이러한 성선설의 정신으로 일관되어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고자]와 [진심]두 편에는 이러한 이론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또 그는 인성 수양 이론이라 할 수 있는 네 가지 항목,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주장하였다. 정치사상은 왕도정치로 집약된다. '백성은 중요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국군(國君)은 대단치 않다'는 것이 맹자 정치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맹자의 주장은 당시 대다수의 평민들이 전쟁과 학정에 무참히 시달리고 있는데 반하여 군주를 위시한 극소수의 특권층만이 사치와 횡포를 자행하는 것을 목격한 데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정자는 국민에 대하여 언제나 정치상의 책임을 져야 하므로, 올바른 정치가 행해지지 않을 때 임금은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고 따라서 그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야 하며, 걸주(桀紂)같이 포악 무도할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는 것이 맹자의 견해이다.
송나라 신종 원풍 6년(1083)에 추국공으로 봉해졌고 7년에 지성(至聖)의 성묘(聖廟)에 배향되었다. 원 지순 원년(1330)에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으로 추증되었으며 명 세종 가정 9년(1530)에 아성맹자(亞聖孟子)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