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門十哲 -10 영천후 전손사(潁川侯 颛孫師)
서무 배향(配享) 제5위(第五位)
전손사는 성이 전손이고 이름이 사이며 자는 자장이다. 진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8세가 적은 공자의 제자이다. 『여씨춘추』에는 "노지비가(魯之鄙家)"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출신이 매우 천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공자는 자장을 평하여 '벽(辟 )'이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주자는 '용모에만 익숙하고 성실성이 부족함'이라고 풀이하였다. 또 자장이 성인의 도를 묻자 공자는 "성인의 자취를 밟지 않으면 방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하여 자장의 학문 태도가 형식상의 모방에 다소 치우침이 있어서 승당입실(昇堂入室)하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일찍이 자장의 부족함에 대하여 반복해서 충과 신에 대한 교육을 하였다. 자장이 정치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마음에 두기를 게으름이 없이 하고 행하기를 충성으로써 한다" 라고 하여 충(忠)과 무권(無倦: 게으름이 없을 것)을 강조하였다. 또 자장이 덕을 높이며 의혹을 분별함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충신(忠信)을 주장하며 의에 옮김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라고 하여 충과 신을 강조하였다. 또 행(行)에 대하여 물었을 때는 말은 충신(忠信)하고 행실은 독경(篤敬)할 것을 강조하였다. 자장은 공자의 가르침을 항상 공경히 듣고는 꼭 띠에 써서 그렇게 행하도록 노력하여 게을리 하지 않아 마침내는 공자의 우수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당 현종 개원27년(739)에 진백(陳伯)으로 봉해졌고, 송 진종 대중상부 2년(1009)에 완구후(宛丘侯)로 가봉되었으며, 정화(正和) 원년(1111)에 영천후(潁川侯)로 봉해졌다. 남송 도종 함순 3년(1267)에 진국공(陳國公)으로 가봉되었고 공문십철로 올려서 성묘(聖廟)에 종향(從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