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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전통사회의 모든 행위의 근본이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 들기까지 생각하고 생활 양식화 하여 사회 효 문화로 정착하자 요즘 불행한 폐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여 매우 안타깝다.

원효(元曉)의 아들 설총의 아래와 같은 시를 봄으로써 경각심을 읽을 수 있다. 인심(仁心)은 터가 되고 효제충신(孝悌忠信) 기둥되야 예의염치(禮義廉恥)로 가옥을 세웠으니 천만년 풍우(風雨)를 만난들 기울 줄이 있으리! 이미 신라때부터 전통사회의 기둥과 대들보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여덟 글자와 인(仁)으로 요약되는 사랑에 있었다. 공자 맹자 등 유가(儒家)의 뜻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지켜온 사회윤리의 기본강령을 재확인했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효는 중국에서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이전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나름의 효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원시 샤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유교가 들어오면서 그것과 합치되어 한국의 독특한 사상이 된 것이다. 효 문화가 불교의 살을 붙이고 유교의 옷을 입었을 뿐이다. 청초한 기풍과 검약한 생활태도를 염(廉)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치(恥)로 보았던 것이다. 「예기」에 “예의와 도리는 사람이 행하고 지켜야 할 중대하고도 귀중한 것이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효와 경로(敬老)가 크게 강조되었다. 「증보문헌비고」를 보면 신라 경덕왕은 효행이 두드러진 사람에게 조곡 3백석을 내리고 집과 전답(口分田)을 하사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표창하였다는 기록으로도 알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눌지왕은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만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불쌍한 백성들과 경노사상이 본보이는 사람들에게 또는 무의탁 노인들을 불러 모아 남당(南堂, 군신합동희의소) 뜰에서 거대한 양로연을 베풀며 함께 식사를 하고 잔치가 끝날무렵 이들에게 곡물과 비단을 나이에 따라 분량을 달리하며 나누어 주었다. 충담사가 지은 「안민가」에도 군(君), 신(臣), 민(民)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전위(轉位)하여 아래와 같이 노래하고 있다.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사랑의 어머니, 백성은 어린아이, 백성이 그 사랑을 알것이다. 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하리라. 그리고 「문헌비고」를 보면 고구려의 유리왕은 늙은 홀아비와 과부 자식없는 노인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없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하사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태조도 위와 같이 베풀었으며 이것은 서기 20년에서 60년대 일이므로 지금부터 1900년 내지 1950년 전에도 경로와 효문화 사상을 국가에서 중요정책으로 권장했다는 기록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삼국시대 국학이 세워지고 유학교육이 이루어질 무렵 6세기경 신라의 승려 원광이 제시한 세속오계 가운데 둘째항목이 사친이효(事親以孝)이다. 부모에 대한 자신의 도덕적 의무를 효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당시 신라의 젊은이들에게 익혀져야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설 수 있음을 확신한 듯하다. 원광의 세속오계는 신라 화랑도 정신의 기본 덕목이 되어 젊은이들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화랑의 활약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나 아는 일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국학에서는 「논어」와 「효경」을 기초적인 교과목으로 설정함으로써 유교적 효사상은 지식인들의 기본 교양으로 자리 잡았다.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 김유신, 사다함, 관창 등이 그들이며 효의 표본으로 기록된 향득(向得) 효녀 지은 설씨녀(薛氏女) 등이 그 이름을 빛내고 있다.

유, 불, 선 삼교에 통한 최치원이 지은「난랑비서문」에서 화랑 정신을 묘사하기를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충성하라는 것은 공자의 말씀이요. 의도적으로 함이 없는 (無爲) 일에 처하고 말씀이 없는 무언(無言) 가운데 가르침을 행하라는 것은 노자의 주장이며, 어떠한 죄라도 범하지 않고 착한 일을 행하라는 것은 석가여래의 교지이다"고 했다.

고려시대 효행담으로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를 죽인 최누백 하늘을 감동시킨 서농 어머니가 늙어가시는 것을 슬퍼하며 노래를 지은 문충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국가질서를 축으로 하는 충효의 논리보다는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향촌사회의 질서로서의 효제 윤리가 강조되었다. 효도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근본이며 모든 일의 기강이요, 백선(百善)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처럼 유교적 효사상은 정치이념의 성격을 갖는 것이고 불교적 효사상은 가족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충효정신을 국가 정책으로 삼고 삶을 살아온 것을 감명 깊게 느낀다. 앞으로 각 가정과 교육당국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인성교육과정을 충실히 교육시켜 밝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
출처 : 새전북신문(http://www.sjbnews.com) 2019년 9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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