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九雲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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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九雲夢)-31 구운몽下-8 덧글 0 | 조회 656 | 2015-06-14 15:43:54
학전  

구운몽(九雲夢)-31 구운몽下-8

 

마침 시비에게 들으니 저저(姐姐)가 가까이 와 계시다 하나, 나는 팔자가 기박하여 인사를 사절하였기 때문에 가 뵈옵지 못하였는데, 저저가 이런 더러운 곳에 오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이소저가 말하였다.
  "나는 본디 초야에 묻힌 사람입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모친을 의지하여 배운 일이 없어 마침 소저의 아름다운 행실을 듣고 한번 모시어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는데, 더러운 몸을 버리지 아니하시니 평생 소원을 푼 듯합니다. 또 들으니 댁에 춘운이 있다 하오니 볼 수 있겠습니까?"
  정소저가 즉시 시비를 명하여 춘운을 부르니 춘운이 들어와 예로써 알현하자 이소저가 일어나 맞아 앉았다.
  이소저가 춘운을 보고 감탄하여 말하였다.
  '듣던 말과 같구나, 정소저가 저러하고 춘운이 또 이러하니 양상서가 어찌 부마를 구하겠는가?'
  이소저가 일어나 부인과 소저께 하직하며 말하였다.
  "날이 저물었으니 물러가지만 거처한 곳이 멀지 아니하니 다시 뵐 날이 있겠습니까?"
  정소저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 사례하여 말하였다.
  "나는 얼굴을 들어 출입하지 못하기에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오니 허물치 마십시오."
  하고, 서로 이별하였다.
  정소저가 춘운에게 말하였다.
  "보검은 땅에 묻혔어도 기운이 두우간(斗牛間)에 쏘이고, 큰 조개는 물 속에 있어도 빛이 수루(戍樓)를 비추니, 이소저가 같은 땅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일찍이 듣지 못하였으니 괴이하다."
  춘운이 말하였다.
  "첩은 의심컨대 화음 진어사의 딸이 상서와 <양류사>를 화답하여 혼인을 언약하였다가 그 집이 환란을 만난 후에 진씨가 아무 데도 간 줄을 모른다 하는데, 반드시 성명을 바꾸고 소저를 쫓아 연분을 잇고자 함인가 합니다."
  소저가 말하였다.
  "나도 진씨 말을 들었지만 그 집이 환란을 만난 후에 진씨는 궁비정속(宮婢定屬)하였다 하니 어찌 오겠는가? 나는 의심컨대 난양공주가 덕행과 재색이 만고에 으뜸이라 하니 그러한가 한다."
  다음날 또 시비를 보내어 이소저를 청하여 춘운이 함께 앉아 종일토록 문장을 의논하였다.
  하루는 이소자가 와서 부인과 소저께 하직하며 말하였다.
  "내 병이 잠깐 나아 내일은 절동(浙東)을 가려 하니 하직합니다."
  정소저가 말하였다.
  "더러운 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자주 부르시니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버리고 돌아가시니 떠나는 정회를 어이 헤아리겠습니까."
  이소저가 말하였다.
  "한 말씀을 소저께 아뢰고자 하나 좇지 아니하실까 염려됩니다."
  정소저가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소저가 말하였다.
  "늙은 어미를 위하여 남해 관음보살의 얼굴과 모습을 그린 그림을 수 놓았는데 문장 명필을 얻어 제목을 쓰고자 하니, 원컨대 소저는 찬문(贊文)을 지어 제목을 써주시면 한편으로는 위친(爲親)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서로 잊지 못할 정표나 해주십시오. 소저가 허락하지 아니하실까 염려하여 족자를 가져 오지 않았으나 거처하는 곳이 멀지 아니하니 잠깐 생각해 주십시오."
  정소저가 말하였다.
  "비록 문필은 없으나 위친하시는 일을 어이 좇지 아니하겠습니까?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가셨으면 합니다."
  이소저가 크게 기뻐하여 일어나 절하고 말하였다.
  "날이 저물면 글 쓰기가 어려울 것이니 내가 타고 온 가마가 비록 더러우나 함께 가셨으면 합니다."
  정소저가 허락하니 이소저가 일어나 부인께 하직하고 춘운의 손을 잡고 이별한 후에 정소저와 함께 흰 옥으로 꾸민 가마를 타고 갈 때, 정소저의 시녀 여러 사람이 따라갔다.
  정소저가 이소저의 침실에 들어가니 보패와 음식이 다 보통과 달리 이상하였다. 이소저가 족자도 내놓지 아니하고 문필도 청하지 아니하자 정소자가 민망하여 말하였다.
  "날이 저물어 가는데 관음화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절하여 뵙고자 합니다."
  이 말을 미처 마치지 못하여 군마(軍馬) 소리가 진동하며 기치창검(旗幟槍劍)이 사면을 에워쌌다. 정소저가 크게 놀라 피하려 하자 이소저가 말하였다.
  "소저는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난양공주로 이름은 소화입니다. 태후 낭랑의 명으로 소저를 모셔 가려합니다."
  정소저가 이 말을 듣고 땅에 내려 재배하여 말하였다.
  "여염집 천한 사람이 지식이 없어 귀한 공주를 알아 뵙지 못하고 예의 없이 하였으니 죽어도 아깝지 아니합니다."
  난양공주가 말하였다.
  "그런 말씀은 차차 하겠지만 태후 낭랑께서 지금 난간에 의지해 기다리시니, 원컨대 소저는 함께 가십시다."
  정소저가 말하였다.
  "귀한 공주께서 먼저 들어가시면 첩이 돌아가 부모께 고하고 이후에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공주가 말하였다.
  "태후가 소저를 보시고자 하여 어명을 내리신 것이니 사양치 마십시오."
  정소저가 말하였다.
  "첩은 본디 천한 사람입니다. 어찌 귀한 공주와 가마를 함께 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