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亂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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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亂中日記)-131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11월 덧글 0 | 조회 713 | 2015-06-29 18:14:27
란공자  
난중일기(亂中日記)-131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11월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2. 11월

1일. 무자. 비가 내렸다. 아침에 사슴 가죽 두 장이 물에 떠내려 왔기에 명나라 장수들에게 줄 물건으로 삼았다. 괴이하다. 미시에 비는 갰으나 북풍이 크게 불어 뱃사람들이 추위에 괴로워했다 .나도 선실에서 웅크리고 맍아 있었더니 마음이 무척 편치 않아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 일 년 같았다.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하랴. 저녁에 북풍이 세게 불어서 밤새도록 배가 흔들려 사람이 안정할 수 없었다. 땀이 나서 몸을 적셨다.

2일. 기축.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일찍 들으니 우수사의 전선이 바람에 떠내려 가다가 바위에 걸려 부서졌다고 한다. 매우 통분한 일이다. 병선 군관 당언량(唐彦良)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선창에 내려 앉아서 다리 놓는 일을 감독했다. 그길로 새집 짖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어두어서 배로 내려왔다.

3일. 경인. 맑음. 일찍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니 선전관 이길원(李吉元)이 배설을 처결할 일로 들어왔다. 배설은 이미 성주 본가로 갔는데 그 본가로 가지 않고 곧장 여기로 온 것이다. 그 사사로운 정을 따른 죄가 크다. 선전관을 녹도의 배로 보냈다.

4일. 신묘. 맑음. 일찍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길원이 머물렀다. 진도 군수 선이문(宣義問)이 왔다.

5일. 임진. 맑음. 따뜻하기가 봄날과 같다.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날이 저물어 배로 내려왔다. 영암 군수 이종성(李宗誠)이 와서 밥을 서른 말이나 지어 일꾼들에게 먹이고 또 말하되 "군량미 이백 섬을 준비하고 벼(中租) 칠백 섬도 준비했다"고 한다. 이날 보성 군수와 홍양 현감을 시켜 군량창고 짓는 것을 살펴보게 했다 .

6일. 계사. 맑음. 일찍.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종일 거니느라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다. 새집에 지붕을 잇고 군량 곳간도 지었다. 전라 우수사 우후가 나무 베어 올 일로 황원장(黃原場)으로 갔다.

7일. 갑오. 맑고도 따듯했다. 이침에 해남의 의병이 왜인의 머리 한 급(級)과 환도 한 자루를 가져와 바쳤다. 이종호와 당언국(唐彦國)을 잡아 왔기에 거제의 배에 가두었다. 늦게 전 홍산 현감 윤영현(尹英賢), 생원 죄집(崔潗)이와서 만났는데 군량으로 벼 마흔 섬과 쌀 여덟 섬을 가져와서 바쳤다. 며칠 동안의 양식으로 도움이 될 만하다. 김응인(金應仁)이 와서 만났다. 이대진의 아들 순생(順生)이 윤영현을 따라왔다 .저녁에 새집의 마루(抹樓)를 다 만들었다. 여러 수사가 와서 만났다. 이날 밤 삼경 꿈에 면이 죽었던 모습이 보여 울부짖으며 곡을 했다. 진도 군수가 들어왔다.

8일. 을미. 맑음. 사경 꿈에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다. 이날은 따뜻하고 바람도 없었다. 새방의 벽에 흙을 발랐다. 이지화(李至和) 부자가 와서 만났다. 마루를 만들었다.

9일. 병시. 맑고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우수사가 와서 만나고 강진 현감 송상보는 현으로 돌아갔다.

10일. 정유. 눈비가 섞여내리고 서북풍이 크게 불어 간신히 배를 건넜다. 이정충이 와서 장흥에 있던 적들이 달아났다고 말했다.

11일. 무술. 맑고 바람도 약해젔다. 식후에 새집에 올라가니 평산(平山)의 새 만호가 도임장(到任狀:임명장)을 바쳤는데 그는 하동 현감 신진의 형 신훤(申萱)이었다. 전하는 말에 승정대부(崇政大夫)로 포상하여 가자(加資:승급)하라는 명령이 이미 나왔다고 한다. 장흥 부사와 배 조방장이 와서 만났다. 저녁에 우후 이정충이 왔다가 초경에 돌아갔다.

12일. 기해. 맑음. 이날 늦게 영암, 나주 사람들이 타작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결박되어 왔기에 그중 주모자를 가려 처형하고 나머지 네 명은 각 배에 가두었다.

13일. 경자. 맑음.

14일. 신축. 맑음. 해남 현감 유형(柳珩)이 와서 윤단중(尹端中)이 무리하게 한 일을 많이 전했다. 또 말하기를 "아속들이 법성포로 피난갔다가 돌아올 때 바람을 만나 배가 전복되는데, 바다 가운데서 만났어도 구조하기는 커녕 도리어 배 안의 물건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중군선(中軍船)에 가두었다. 또 김인수(金仁守)는 경상도 수영의 배에 가두었다. 내일은 아버님의 제삿날이니 출입하지 말아야겠다.

15일. 임인. 맑음.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식후에 새집에 올라갔다. 늦게 임환과 윤영현이 와서 만났다. 오늘 밤에 송한이 서울에서 이곳으로 들어왔다.

16일. 계묘. 맑음. 아침에 조방장 배홍립, 장흥 부사 전복 및 진중에 있는 여러 장수가 와서 만났다. 군공(軍功)을 마련한 기록을 살펴보니 거제 현령 안위가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고 나머지도 차례대로 벼슬을 받았으며 내게는 은자(銀子) 스무 냥을 상금으로 보냈다. 명나라 장수 경리(經理) 양호(陽鎬)가 붉은 비단 한 필을 보내면서 "배에 이 붉은 비단을 걸어 주고 싶으나 멀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영의정의 답장도 왔다.

17일. 갑진. 비가 계속 내렷다. 양경리(陽經理:양호)의 차관(差官)이 초유문(招諭文)과 면사첩(免死帖)을 가지고 왔다.

18일. 을사. 맑음. 따뜻하기가 봄날과 같다. 윤영현이 와서 만났다. 정한기(鄭漢己)도 왔다. 몸에서 땀이 났다.

19일. 병오. 흐림 .배 조방장과 장흥 부사가 와서 만났다.

20일. 정미.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도 계속 불었다. 임준영이 와서 완도(莞島)를 정탐한 내용을 전하는데 적선이 없다고 했다.

21일. 무신. 맑음. 송응기(宋應璣) 등이 산역군(山役軍)을 거느리고 해남에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날 저녁에 순생(順生)이 와서 잤다.

22일. 기유. 흐리다 개다 했다. 저녁에 김애(金愛)가 아산에서 돌아왔는데 유지를 가지고 온 사람이다. 이달 10일 아산에서 올 때도 모두 그가 편지를 가지고 왔다. 밤에 비와 눈이 내리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장흥에 있던 적이 20일에 달아났다는 보고가 왔다.

23일. 경술. 바람이 세고 눈도 많이 왔다. 이날 승첩한 장계를 썼다.저녁에 얼음이 얼었다고 한다. 아산의 집으로 편지를 쓰려고 하니 눈물을 거둘 수가 없었다. 죽은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24일. 신해. 비와 눈이 내렸다. 서북풍이 계속 불었다.

25일. 임자. 눈이 내렸다.

26일. 계축. 비와 눈이 내렸다 .추위가 갑절이나 심했다.

27일. 갑인. 맑음. 이날 장흥의 승첩 장계를 수정했다.

28일. 을묘. 맑음. 장계를 봉했다. 무안에 사는 김덕수(金德秀)가 뱃길로 군량으로 벼 열다섯 섬을 가져와 바쳤다.

29일. 병진. 맑음 .마 유격(麻貴)의 차관 왕재(王才)가 뱃길로 명나라 군사가 내려온다고 했다. 전희광(田希光), 정황수(鄭凰壽)가 오고 무안 현감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