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亂中日記)
한자공부,고전 > 난중일기 (亂中日記)
난중일기(亂中日記)-128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9월2 덧글 0 | 조회 656 | 2015-06-25 17:59:38
란공자  

난중일기(亂中日記)-128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9월2

16일. 갑진. 맑음. 이른 아침에 별망군(別望軍)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명량을 거처 곧장 진지를 향해 온다'고 했다. 곧 바로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백삼십여 척이 우리 배들을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은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회피할 꾀만 내고 있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이미 두 마장 밖에 있었다. 나는 노를 급히 저어 앞으로 돌진하며 지자(地字) 현자(玄字) 등의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아 대니 탄환이 나가는 것이 바람과 우레처럼 맹렬했다. 군관들은 배위에 빽뻭이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의 무리가 저항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났다 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 쌓여 형세가 장차  어찌 될지 헤아릴 수 없으니 온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질려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기를 "적선이 바로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더욱 심력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하였다.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먼바다로 물러가있고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려하니 적들이 물러간 것을 틈타 더 대들 것 같아서 나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게하고 중군에게 명령하는 깃발을 세우고 또 초요기를 세웠더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에 가까이 왔는데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이르렀다. 나는 배위에 서서 직접 안위을 부르며 말하기를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고 말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을 불러서 말하기를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했다.

그리하여 두 배가 먼저 교전하고 있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두 척에 지령하니 한꺼번에 안위이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기어가며 다투어 올라갔다. 이에 안위와 그 배에 탄 군사들이 각기 죽을 힘을 다해서 혹 몽둥이를 들거나 혹 긴창을 잡거나 혹 수마석(水磨石) 덩어리로 무수히 난격하였다. 배위의 군사들이 거의 기운이 다하자 나는 뱃머리를 돌려 곧장 처들어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댔다. 적선 세 척이 거의 뒤집혔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 평산포 대장 정응두(鄭應斗)의 배가 잇달아 와서 협력하여 적을 쏘아 죽이니 한 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항복한 왜인 준사(俊沙)는 안골에 있는 적진에서 투항해 온 자인데 내 배위에 있다가 바다를 굽어보며 말하기를 "무늬 놓은 붉은 비단옷 입은 자가 바로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馬多時)입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무상(無上) 김돌손(金乭孫)을 시켜 갈구리로 낚아 뱃머리에 올리게 하니 준사가 날뛰면서 "이자가 마다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로 시체를 토막내라고 명령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꺽였다. 우리의 여러  배들은 적이 짐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일시에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나아가 각기 지자, 현자 총통을 쏘니 소리가 산천을 흔들었고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대어 적선 서른한 척을 쳐부수자 적선들은 회퇴하여서 다시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우리의 수군이 싸움하던 바다에 정박하고 싶었지만 물살이 매우 험하고 바람도 역풍으로 불며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장사도로 옮겨 정박하고 맘을 지냈다. 이번 일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17일. 을사. 맑음. 어외도(於外島)에 이르니 피난선이 무려 삼백여 척이 먼저 와 있었다. 나주 진사 임선(林愃) 임업(林業) 등이 보러 왔다. 우리 수군이 크게 승리한 것을 알고 서로 다투어 치하하고 또 많은 양식을 가져와 군사들에게 주었다.

18일. 병오. 맑음. 그대로 어외도에 머물렀다. 내 배에 탓던 순천 감목관 김탁(金卓)과 군영의 종 계생(戒生)이 탄환에 맞아 죽었다. 박영남과 봉학(奉鶴) 및 강진 현감 이극신(李克新)도 탄환에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19일. 정미. 맑음. 일찍 출발하여 배를 몰았다. 바람이 약하고 물살도 순하여 무사히 칠산도 바다를 건넜다. 저녁에 법성포에 이르니 흉악한 적을은 육지를 통해 들어와서 인가와 창고마다 불을 질렀다. 해가 질 무렵 홍농(弘農) 앞에 이르러 배를 정박시키고 잤다.

20일. 무신. 맑음. 새벽에 출항하여 곧장 위도(蝟島)에 이르니 피난선이 많이 정박해 있었다. 황득중과 종 금이 등을 보내어 종 윤금을 찾아 잡아 오게 했더니 과연 위도 밖에 있기에 묶어다가 배에 실었다. 이광축, 이광보가 와서 만나고 이지화 부자도 왔다. 날이 저물어 그곳에서 잤다.

21일. 기유. 맑음. 일찍 출발하여 고군산도에 이르렀다. 호남 순찰사가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 배를 타고 급히 옥구로 향했다고 하였다. 늦게 거선 바람이 크게 불었다.

22일. 경술. 맑았으나 북풍이 크게 불었다. 그대로 머물렀다 .나주 목사 배응경, 무장현감 이람(李覽이 와서 만났다.

23일 신해 맑음 승첩(勝捷)에 대한 징계 초안을 수정했다. 정희렬(丁希悅)이 와서 만났다.

24일. 임자. 맑음. 몸이 불편하여 신음했다. 김홍원(金弘遠)이 와서 만났다.

25일. 계축. 맑음. 이날 밤은 몸이 몹시 불편하고 식은 땀이 온몸을 적셨다.

26일. 갑인. 맑음. 몸이 불편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27일 을묘 송한, 김국, 배세춘(裵世春) 등이 승첩에 대한 장계를 가지고 뱃길로 올라갔다. 정제(鄭霽)는 충청 수사  처소로 부찰사에게 보낼 공문을 가지고 함께 갔다.

28일. 병진.맑음. 송한과 정제가 바람에 막혀 되돌아왔다.

29일 정사. 맑음. 장계와 정제가 다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