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亂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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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亂中日記)-127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9월 덧글 0 | 조회 768 | 2015-06-25 17:59:16
란공자  

난중일기(亂中日記)-127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9월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9월

1일. 기축. 맑음. 벽파정위에 내려가 앉았다. 점세가 제주에서 왔는데, 소 다섯마리를 싣고 와서 바첫다.

2일. 경인. 맑음. 배설이 도망쳤다.

3일. 신묘. 아침에는 맑더니 저녁에 비가 뿌렸다. 밤에늠 북풍이 불었다.

4일. 임진. 맑았으나 북풍이 세게 불었다. 배가 고정해 있지 않아 각 배들을 겨우 보전했다.

5일. 계사. 북풍이 세게 불었다.

6일. 갑오. 바람이 조금 가라앉았으나 추위가 엄습하여 격군들 때문에 매우 걱정되었다.

7일. 을미. 맑음. 탐망군과 임종영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쉰다섯 척 가운데 열세 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도착했는데 그들의 목적이 필시 우리 수군에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에게 전령하여 재삼 타이르고 경계했다. 신시에 과연 적선 열세 척이 처들어왔는데 우리 여러 배들이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 추격하자 적선은 뱃머리를 돌려 피해 달아났다. 먼바다 밖까지 쫓아 갔지만 바람과 물결이 모두 거스르고 복병선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끝까지 쫓아기는 않았다. 벽파정으로 들어와서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약속하기를 "오늘 밤에는 반드시 적의 야습이 있을 것이니 모든 장수들은 미리 알아서 대비할 것이요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군법대로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거듭 당부하고 헤어졌다. 밤 이경에 왜적이 과연 와서 야습하여 탄환을 많이 쏘았다. 내가 탄 배가 곧바로 앞장서서 지자포(地字砲)를 쏘니 강산이 온통 흔들렸다. 적의 무리들은 범할 수 없음을 알고 네 번이나 나왔다가 물러났다 하면서 화포만 쏘다가 삼경 말에 아주 물러갔다.

8일. 병시. 맑음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했다. 우수사 김억추(金億秋)는 겨우 만호에만 적합하고 곤임을 맡길 수없는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다만 때를 못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

9일. 정유. 맑음.이날은 곧 9일 중양절이다. 일 년 중의 명절이므로 내 비록 복중의 사람이지만 여러 장수와 병졸들에게는 먹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주에서 온 소 다섯 마리를 녹도, 안골포 두 만호에게 주어 장병들에게 먹이도록 지시했다. 늦게 적선 두 척이 어란으로부터 곧장 감보도에 와서 우리 수군의 많고 적음을 정탐하였다. 이에 영등포 만호 조계종이 끝까지 추격하니 적들은 당황한 나머지 형세가 급박하자, 배에 실었던 여러가지 물건들을 모두 바다가운데 던져 버리고 달아났다.

10일. 무술. 맑음. 적선이 멀리 도망갔다.

11일. 기해 .흐리고 비올 징후가 있었다.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어머님 그리운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아들 회는 내 심정을 알고 심히 불편해하였다.

12일 경자 종일 비가 뿌렸다 배 뜸 아래에서 심회를 스스로 걷잡을 수가 없었다.

13일. 신축. 맑았지만 북풍이 세게 불어서 배가 안정할 수 없었다. 꿈이 예사롭지 않으니 임진년 대첩할 때의 꿈과 거의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었다.

14일. 임인. 맑음. 북풍이 세게 불었다. 벽파정 맞은편에서 연기가 오르기에 배를 보내어 싣고 오니 바로 임준영이었다. 그가 정탐하고 와서 말하기를 "적선 이백여 척 가운데 쉰다섯 척이 먼저 어란 앞바다에 들어왔다'고 했다. 또 말하기를 "사로 잡혔다가 도망해 돌아온 김중걸이 전하는 말에 '중걸이 이달 6일 달마산에서 왜적에게 붙잡혀 묶인 채로 왜선에 실렸는데 다행이 임진년에 포로가 된 김해 사람을 만나 왜장에게 청하여 결박을 풀고 배에서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왜놈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김해 사람이 귀에 대고 몰래 이야기하기를 "왜놈들이 모여서 논의하는데 '조선 수군 여남은 척이 우리 배를 추격하여 혹은 사살하고 혹은 배를 불태웠으니 극히 통분할 일이다. 각처의 배를 불러 모아 합세해서 조선 수군을 섬멸해야한다. 그후 곧장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다"는 것이다.이 말은 비록 모두 믿을 수는 없으나 그럴 수 없는 것도 아니어서 곧바로 전령선을 보내 피난민들을 타일러 급히 육지로 올라가도록 하였다.

15일. 계묘. 맑음.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듫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鳴梁)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으로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텨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