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亂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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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亂中日記)-122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8월 덧글 0 | 조회 866 | 2015-06-22 15:43:31
란공자  

난중일기(亂中日記)-122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8월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8월

1일. 기미. 큰비가 와서 물이 불었다. 늦게 이 찰방(시경)이 와서 만났다. 조신옥, 홍대방 등이 와서 만났다.

2일. 경신. 잠시 갰다. 홀로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운 마음이 어떠하랴. 비통할 따름이다 .아닐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3일. 신유. 맑음. 이른 아침에 선전과 양호(梁護)가 뜻밖에 들어와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주며 당부하는데 그 내용은 곧 삼도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숙배를 한 3뒤 삼가 받은 서장(서장)을 써서 봉해 올리고 이날 바로 길을 떠나 곧장 두치 가는 길에 들어섰다 초경에 행보역(行步驛)에 이르러 말을 쉬게하고 삼경 말에 길을 떠나 두치에 이르니 날이새려고 했다. 남해 현감 박대남은 길을 잃고 강정(江亭)으로 잘못 들어갔기에 말에서 내려 불렀다. 쌍계동(雙溪洞)에 이르니 어지러운 암석들이 뾰쪽하게 솟아 있고 갓 내린 비에 물이 넘쳐 흘러 간신이 건넜다. 석주관(石柱關)에 이르니 이원춘(李元春)과 유해(柳海)가 복병하고 지키다가 나를 보고는 적을 토벌할 일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저물녘 구례현에 이르니 온 경내가 쓸쓸했다. 성 북문 밖 전날 묵었던 주인집에서 잤는데 주인은 이미 산골로 피난 갔다고 했다. 손인필이 바로 와서 만났는데 곡식까지 지고 왔으며 손응남은 때 이른 감을 바쳤다.

4일. 임술. 맑음. 아침 식사 뒤에 압록강원(鴨綠江院)에 이르러 점심밥을 짓고 말의 병도 고쳤다. 고산 현감 최진강(崔鎭剛)이 군인을 교체할 일로 와서 수군의 일을 많이 말했다. 오후에 곡성에 이르니 관청과 마을이 온통 비어 있었다. 이 고을에서 잤다. 남해 현감 박대남은 곧장 남원으로 갔다.

5일. 계해. 맑음. 옥과(玉果) 경계에 이르니 피난민들이 길에 가득 찼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말에서 내려서 앉아 타일렀다. 현에 들어갈 때 이기남 부자를 만나 함께 현에 이르니 정사준(鄭思竣) 정사립(鄭思立)이 마중 나와서 함께 이야기했다. 옥과 현감 홍요좌는 처음에는 병을 핑계 삼아 나오지 않더니 얼마 뒤 나와서 만났다. 붙잡아다가 처벌하려고 했기 때문에 보러 나온 것이다.

6일. 갑자. 맑음. 이날은 옥과에서 머물렀다. 초경에 송대립 등이 적을 정탐하고 왔다.

7일. 을축. 맑음. 이른 아침에 길에 올라 곧장 순천으로 가는데 도중에 선전관 원집(元潗)을 만나 임금의 유지를 받았다. 병마사가 거느렸던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돌아가는 길에 줄을 이었으므로 말 세 필과 활 화살을 약간 빼앗아 왔다. 곡성의 강정(江亭)에서 잤다.

8일. 병인. 새벽에 출발하여 부유창(富有倉)에서 아침밥을 먹으려는 데 병사(兵使) 이복남이 이미 명령하여 불을 질러 놓았다. 광양 현감 구덕령(具德齡), 나주 판관 원종의(元宗義), 옥구 현감 김희온 등이 창고 바닥에 숨어있다가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가 배경남과 함께 구치(鳩峙)에 이르렀다. 내가 말에서 내려 명령을 내렸더니 한꺼번에 와서 인하였다. 내가 피해 다니는 것을 들추어 꾸짖었더니 모두 그 죄를 병사 이복남에게 돌렸다. 곧장 길을 떠나 순천에 이르니 성 안팎에는인적도 없이 적막했다. 오직 승려 혜희(惠熙)가 와서 알현하므로 의병장의 직첩을 주고 총통 등은 옮겨 묻게 했다. 장전(長箭)과 편전(片箭)은 군관들에게 나누어 소지하게 하고 그대로 순천부(順天府) 관저(官邸:관사)에서 잤다.

9일. 정묘. 맑음. 일찍  출발하여 낙안에  이르니 오 리의 길에 까지 사람들이 많이 나와 인사했다. 백성들이 흩어져 달아난 까닭을 물으니 모두들 말하기를"병사 이복남이 적이 처들어온다고 떠들면서 창고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니 이런 까닭에 백성들도 흩어져 도망했다"고 했다. 관사에 이르니 적막하여 인기척도 없었다. 순천 부사 우치적, 김제 군수 고봉상(高鳳翔) 등이 와서 인사했다. 늦게 보성(寶城)의 조양창(兆陽倉)에 이르러 김안도(金安道)의 집에서 잤다.

10일. 무진. 맑음. 몸이 불편하여 그대로 임안도의 집에 유숙했다.

11일. 기사. 멁움 .아침에 박곡(博谷) 양산항(梁山沆)의 집으로 옮겨 묵었다. 홍희립 최대성이 와서 만났다.

12일. 경오. 맑음. 장계의 초안을 잡았다. 그대로 묵었다. 거제 현령 안위와 발포 만호 소계남이 와서 만났다.

13일. 신미. 맑음. 거제 현령과 발포 만호가 와서 인사하고 돌아갔다. 수사 배설과 여러 장수 및 피해나온 사람들이 묵고 있다는소식을 들었다. 우후 이몽구는 오긴 했으나 만나지 않았다. 하동 현감 신진을 통해 진주 정개산성과 벽건산성은 병사 이복남이 스스로 외진(外陣)을 파괴시켰다는 소식을 들으니 통탄할 일이다.

14일. 임신. 맑음. 아침에 이몽구에게 곤장 여든대를 첬다. 식후에 장계 일곱 통을 봉하여 윤선각에게 가지고 가게했다. 오후에 어사 임몽정(任蒙正)을 만날 일로 보성에 가서 잤다. 밤에 큰 비가 쏟아지듯 내렸다.

15일.. 계유.. 비가 계속 오다가 늦게 맑게 갰다. 식후에 열선루(列仙樓)에 나가 앉아 있으니 선전관 박천봉(朴天鳳)이 유지를 가지고 왔다. 그것은 8월 7일에 성첩한 공문이었다. 영상 유성룡은 경기지방으로 나가 순행중이라고 하니 곧바로 잘 받았다는 장계를 썼고 보성의 군기를 검열하여 네 마리 말에 나누어 실었다.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치니 심회가 매우 편치않았다.

16일. 갑술. 맑음. 아침에 보성 군수와 군곤 등을 굴암(屈巖)으로 보내어 피해 달아난 관리들을 찾아내게 했다. 선전관 박천봉이 돌아가기에 그 편에 나주 목사와 어사 임몽정에게 답장을 부쳤다. 사령들을 박사명(朴士明)의 집에 보냈더니 사명의 집은 이미비었다고 했다. 오후에 궁장(弓匠) 지이(智伊)와 태귀생(太貴生) 시의(先衣), 대남(大男) 등이 들어왔다. 김희방, 김붕만도 왔다.

17일. 을해. 맑음. 일찍 아침 식사 후에 곧장 장흥 땅 벡시정(白沙汀)에 이르렀다. 점심 후에 군영구미(軍營仇未)로 가니 온 경내가 이미 무인지경이 되었다. 수사 배설은 내가 탈 배를 보내지 않았다. 장흥의 군관 감색(監色:감관)이 군량을 모두 훔쳐 관리들이 나누어 가져갈 적에 마침 와서 붙잡게 되어 중장(重杖)을 내렸다. 그대로 여기서 잤다.

18일. 병자. 맑음. 회령포(會寧浦)에  갔더니 경상 수사 배설이 배멀미를 핑계 대므로 만나지 않았다. 히령포 관사에서 잤다.

19일. 정축. 맑음. 여러 장수들이 교서에 숙배했는데 배설은 교서를 위하여 지영(祗迎)하여 절하지 않았다. 그 능멸하고 오만한 태도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그의 영리들에게 곤장을 쳤다. 회령포 만호 민정붕(閔廷鵬)이  그 전선(戰船)에서 받은 물건을 사사로이 피란민 위덕의(魏德毅) 등에게 준 죄로 곤장 스무 대를 쳤다.

20일. 무인. 맑음. 앞 포구가 매우 좁아서 이진(梨津)으로 진을 옮겼다.

21일. 기묘. 맑음. 날이 새기 전에 곽란이 나서 심하게 앓았다. 몸을 차게 해서 그런가하여 소주를  마셨더니 얼마 뒤 인사불성이 되어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앉아서 밤을 새웠다.

22일. 경진. 맑음. 곽난이 점점 심해져 일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23일. 신사. 맑음 .통증이 매우 심해져 배에 머무르기가 불편하여 배타는 것을 포기하고 바다에거 나와 육지에서 잤다.

24일. 임오. 맑음. 일찍 아침에 도괘(刀掛:掛刀浦)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었다. 어란 앞바다에 이르니 가는 곳마다 텅 비었다. 바다 가운데서 잤다.

25일. 계미. 맑음. 그대로 어란포에 머물렸다. 아침 식사를 할 때 당포의 포작(鮑作)이 방목하던 소를 훔쳐 끌고 가면서 헛소문을 퍼뜨리되 "왜적이 왔다 왜적이 왔다"고 했다. 나는 이미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헛소문을 낸 두사람을 잡아다가 곧 목을 베어 효시하게 하니 군중의 인심이 크게 안정되었다.

26일. 갑신. 맑음. 그대로 어란포에 머물렀다. 임준영이 말을 타고 달려와서 "왜적이 이진에 이르렀다"고 고하였다. 우수사가 왔다.

27일. 을유. 맑음. 그대로 어란 바다 가운데서 머물렀다.

28일. 병술. 맑음. 적선 여덟 척이 뜻하지 않게 들어 와 여러 배들이 두려워 겁을 먹고 피하려고 하니 경상 수사 배설이 피하여 후퇴하려고 하였다. 나는 꼼짝 않고 있다가 적선이 바짝 다가오자 호각을 불고 깃발을 지위하며 뒤쫏게 하니 적선들이 물러갔다. 갈두(葛頭)까지 쫓아갔다가 돌아왔다. 저녁에는 장도(獐島)로 옮겨 머물렀다.

29일. 정해. 맑음. 아침에 벽파진(碧派津)으로 건너갔다.

30일. 무자. 맑음 .그대로 벽파진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