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亂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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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亂中日記)-120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7월 덧글 0 | 조회 716 | 2015-06-22 15:42:49
란공자  
난중일기(亂中日記)-120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7월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7월

1일. 경인. 새벽에 비가 오고 늦게 갰다. 명나라 사람 세 명이 왔는데 부산 가는 길이라고 했다. 송대립(宋大立)이 송득운(宋得運)과 함께 왔다. 안각(安珏)도 와서 만났다. 저녁에 서철(徐徹) 및 방덕수(方德壽)가 그 아들들과 함께 와서 잤다. 이날 밤 가을 기운이 몹시 서늘하니 슬픔과 그리움이 어떠하겠는가. 송득운이 원수의 진에 다녀온 일에 의하면 종사관 황여일이 큰 냇가에서 피리 소리를 듣고 있더라는 것이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오늘이 바로 인종의 제삿날이다.

2일. 신묘. 맑음 .아침에 변덕수(卞德壽)가 돌아왔다 .늦게 신제운과 평해에 사는 정인서(鄭仁恕)가 종사관에게 문안활 일로 여기에 왔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인데 멀리 천리 밖에 와서 군영에서 복무하고 있으니 인간사가 어찌 이러한 것인가.

3일. 임진. 맑음. 새벽에 앉아있으니 싸늘한 기운이 뼛속에 스민다. 비통한 마음이 더욱 심해졌다. 제사에 쓸 유과와 밀가루(眞末)를 장만했다. 늦게 정읍의 군사 이량(李良), 최언환(崔彦還), 건손(巾孫) 등 세 사람을 심부름 시키라고 보내왔다. 늦게 장준완(蔣俊琬)이 남해로부터 와서 만났는데 남해 현감의 병이 심하다고 전해왔다. 마음이 애타고 걱정스러웠다. 얼마 뒤 합천 군수 오운(吳澐)이 보러와서 산성(山城)의 일을 많이 이야기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 원수의 진으로 가서 황종사관과 함께 이야기했다. 종사관은 전적(典籍) 박안이(朴安義)와 함께 활을 쏘았다. 이때 좌병사가 군관을 시켜 항복한 왜군 두 명을 압송해 보냈는데 그들은 가등청정의 부하라고 했다. 해가 저물어서 돌아왔는데 고령 현감이 성주(星州)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4일. 계사. 맑음. 아침에 황 종사관이 정인서를 보내 문안했다. 늦게 이방과 유황이 오고 자원군(自願軍)인 흥양의 양점(梁霑), 천(纘), 기(紀) 등이 변방을 지키로 왔다, 변어량(卞汝良), 변회보(卞懷寶) ,황언기(黃彦己) 등이 모두 출신(出身)하고서 보러왔다. 변사증(卞師曾)과 변대성(卞大成) 등도 와서 만났다. 점심을 먹은 뒤에 비가 뿌렸다. 아침밥을 먹을 때 안극가가 와서 만났다.  어두어질 때 비가 크게 내리더니 밤새도록그치지 않았다.

5일. 갑오.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에 초계  군수가 체찰사의 종사관 남이공이 경내를 지나간다고 하면서 산성에서부터 문 앞을 지나갔다. 늦게 변덕수가 왔다.변존서가 마흘방으로 갔다.

6일. 을미. 맑음. 꿈에 윤삼빙(尹三聘)을 난났는데 나주로 귀양 간다고했다. 늦게 이방이 와서 만났다. 홀로 빈방에 앉았으니 그리움과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것인가. 저녁에 바깥채에 나가 앉았다가 변존서가 마흘방에서 돌아왔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안각 형제도 변홍백을 따라왔다. 이날 제사에 쓸 중배끼(中朴桂) 다섯 말을 꿀로 만들어 봉햇 시렁에 얹었다.

7일. 병시. 맑음 .오늘은 칠석이다. 슬프고 그리운 마음이 어찌 그치랴. 꿈에 원 공과 함께 모였는데 나는 원공의 윗자리에 앉아 음식상을 내올 때 원균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징조를 잘 모르겠다. 박영남이 한산도에서 와서 "그 주장(主將)의 잘못 때문에 대신 죄를 받으려고 원수에게 붙잡혀왔다"고 했다. 초계 군수가 절물(節物:철끼라 나오는 물건)을 마련하여 보내왔다. 아침에 안각 형제가 와서 만났다. 저물녘에 흥양의 박응서가 와서 만나고 심준 등도 와서 만났다. 의령 현감 김전(金銓)이 고령에서 와서 병사의 처사가 잘못된 것을 많이 이야기했다.

8일. 정유. 맑음. 아침에 이방(李芳)이 보러왔기에 식사를 대접해 보냈다. 그 에게서 들으니 원수가 구례에서 이미 곤양에 이르렀다고 한다. 늦게 집 주인 이어해(李魚海)와 최태보(崔台輔)가 와서 만났다. 변덕수가 또 왔다 .저녁에 솔대립, 유홍, 박영남이 왔는데 송과 유 두사람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9일. 무술. 맑음. 내일 아들 열을 아산으로 보내려고 제사에 쓸 과일을 봉하는 것을 살펴 보았다. 늦게 윤감 ,문보 등이 술을 가지고 와서 열과 변존서 등이 돌아가는 것을 술로 전별했다. 이 날은 달빛이 대낮같이 밝으니 어머니를 그리며 슬피 우느라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10일. 기해. 맑음. 새벽에 열과 변존서를 보낼 일로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일찍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정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하고 통곡하며 떠나보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지경에 이르렀는가. 구례에서 구해 온 말을 타고 가니 더욱 염려된다. 열 등이 막 떠나자 황 종사관(황여일)이 와서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늦게 서철(徐徹)이 와서 만났다. 정상명이 말의 뱃대끈(馬帶)을 종이로 만들기를 마쳤다. 저녁에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어머님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더욱 심하여 밤이 깊도록 잠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11일. 경자. 맑음. 열이 떠나간 것을 걱정하는 마음 어찌 감당하랴. 더위가 매우 엄혹하여 근심이 끊이지 않았다. 늦게 변홍달, 신제윤, 임중형(林仲亨) 등이 와서 난났다. 홀로 빈 대청에 앉았으니 그리운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매우 비통하다. 종 태문(太文)과 종이(終伊)가 순천으로 갔다.

12일. 신축. 맑음. 아침에 합천 군수가 햅쌀과 수박(西果)을 보냈다. 점심을 지을 무렵 박응원, 현응진(玄應辰), 홍우공(洪禹功), 임영립(林英立) 등이 박명현(朴名賢)이 있는 곳에서 와서 함께 밥을 먹었다. 종 평세는 열을 따라갔다가 돌아왔다. 잘 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행이다.그러나 슬프고 한탄스러움이야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이희남이 사철쑥(茵蔯) 백 묶음을 베어왔다.

13일. 임인. 맑음. 아침에 남해 현령이 편지를 보내고 음식물도 많이 보냈다고 하며 또 싸움말을 끌어가겠다고 하기에 답장을 썼다. 늦게 이태수, 조신옥, 홍대방이 와서 만나고 또 적을 토벌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솔대립 .장득홍(張得洪)도 왔다. 장득홍은 스스로 준비해서 복무하겠다고 고하기에 양식 두 말을 내주었다. 이날 칡을 캐어왔다. 이방도 와서 만났다. 남해의 아전이 심부름꾼 두 명과 함께 왔다.

14일. 계묘. 맑음. 이른 아침에 정상명과 종 평세, 귀인(貴仁,) 짐말 두 필을 남해로 보냈다. 정상명은 싸움말(戰馬)를 끌고 오도록 했다. 새벽꿈을 꾸었는데 내가 체찰사와 함께 어느 곳에 이르니 많은 송장들이 널려 있었는데 혹은 밟고 혹을 목을 베기도 했다. 아침을 먹을 때 문인수(文麟壽)가 와가채(蝸歌菜)와 동아전과(東瓜餞)를 가져왔다. 방응원, 윤선각, 형응진, 홍우공 등과 함께 이야기했다. 홍우공은 자기 아버지의 병으로 종군을 원하지 않아 나에게 팔이 아프다고 필계를 댔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사시에 황 종사관은 정인서를 보내 문안하고 또 김해 사람으로 왜놈에게 붙었던 김억(金億)의 고목을 보여주었다. 이에 의하면'7일에 왜선 오백여 척이 부산으로 드나들고 9일 왜선 천 척이 합세하여 우리 수군과 절영도 앞바다에서 싸웠는데 우리 전선 다섯 척이 두모포(豆毛浦)에 표류하여 대었고 일곱 척은 간곳이 없었다 "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분함을 이기지 못해 곧바로 황 종사관이 군대 점호하는 곳으로 달려가서 얼마 뒤 내가 타고 간 말을 홍대방에게 달려 보라고 했는데 매우 잘 달렸다. 비 올 징후가 많아서 돌아와 집에 도착하니 비가 마구 쏟아졌다. 이경에 맑게 개고 달빛이 조금씩 밝아져 낮보다 갑절 밝으니 회포를 어찌 말로 다 하랴.

15일. 갑진. 비가 오다 개다 했다. 늦게 조신옥, 홍대방 등과 여기 있는 윤선각(尹先覺)까지 아홉 명을 불러서 떡을 차려 먹었다. 가장 늦게 중군 이덕필이 왔다. 저물어서 돌아갔다. 그를 통해 우리 수군 이십여 척이 적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분통하였다. 제어할 방책이 없는 것이 한스럽다. 저녁비가 크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