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철학의 형성과 사상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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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철학의 형성과 사상의 심화- 42 인간의 양면성과 마음의 양면성 덧글 0 | 조회 288 | 2016-09-19 13:13:54
학전  

유가철학의 형성과 사상의 심화- 42 인간의 양면성과 마음의 양면성

2. 마음의 양면성-3


 마음과 본성과 정감에 대하여 주희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마음은 비유하자면 물이고 본성은 물의 이치이다. 본성은 물의 고요한 것에 처한 것이고 정감은ㄹ 물의 움직인 것에서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부리면 물이 흘러넘치게 된다. 곧 마음은 물에 비유하고 본성은 물의 본원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물이 흐르는 것은 정감이며 물이 흘러넘치는 것은 욕심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욕심이 과도해지면 바로 악과 연결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악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가다듬어(涵養) 천리를 보존해야 하고(存天理) 일이 있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잘 살펴서(省察) 천리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에서 제시한 ‘경건하게 처신 한다’는 거경(居敬)의 실천방법이다.


 성리학에서는 마음의 핵심을 이루는 본성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본성은 인간존재의 근본이며 사물의 본바탕이기 때문이다. 주희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제시하였다. 본연지성은 가장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인성이고 기질지성은 현상적이고 구체적인 인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연지성은 형이상(形而上)적인 것으로 도덕본체론상에서 말한 절대선(仁義禮智)이며, 기질지성은 결코 기질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기질 가운데 있는 리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본연지성은 결코 기질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기질 가운데 있는 리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본연지성은 순수한 리 즉 본성의 본연 그대로의 말이라면 기질지성은 기질속의 리 즉 마음속의 본성을 지칭한 것이다.


 주희는 본연지성을 논할 때는 오로지 리만을 가리켜서 말하고 기질지성을 논할 때는 리와 기를 섞어서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본연지성은 오직 추상적인 도덕원리일 뿐인 것으로 절대선이다. 실제적인 인간의 본성은 사람의 형체와 떨어져서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형체의 제한 속에서 상대적으로 선과 악이 결정되어 진다. 이와 같이 현상적이고 사실적인 인성이 바로 기질지성이다. 주희가 말하기를 본연지성은 지극한 선일뿐이어서 기질을 가지고 인성을 말하지 않으면 어두움과 밝음 열려있음과 닫혀있음, 단단함과 부드러움, 강한,것과 약한 것 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완비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단지 기질지성만을 가지고 인성을 논하면서 그 본원의 측면을 말하지 않으면 비록 어두움과 밝음 열려있음과 닫혀있음 단단함과 부드러움, 강한 것과 약한 것 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지극히 선한 근원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므로 밝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성과 기질을 함께 살펴본 연후에야 인성을 다 이해할 수 있으니 이러한 측면에서 인성이 곧 기질이고 기질이 곧 인성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성은 본성과 기질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기질 없는 본성만 논한다면 갖추지 못함이 있고(有不備) 본성 없는 기질만 논한다면 밝지 못함이 있다.(有不明) 곧 기질지성이 실제의 인간의 성이라는 것과 기질지성을 이와 기의 결합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을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또  주희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인성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성임을 설명하면서 선과 악을 밝히고 있다. 본연지성은 순수 지선한 것이고 기질지성은 그 기질의 차이에 따라 본연지성이 체한을 받으므로 선과 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마음이 갖는 양면성을 볼 수 있다.


 요컨대 주희는 본성을 리에 마음을 기에 분속시키고 본성은 불변적인 순수지선 그대로이나 마음은 가변적인 것으로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본성은 기질과 섞여있는 본성이 되어 기질의 제한을 받은 본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질지성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질지성은 그 근원에 있어서 본연지성과 본질적으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다만 본연지성 그 자체가 별도의 기질에 제한을 받은 것이 따름인  것이다. 따라서 이 때의 본성은 마음의 주체가 되고 마음은 본성이 머무는 집이 된다. 따라서 a마음의 작용 상에서 어떻게 하면 기질의 제한을 최소화하여 본연지성을 최대로 들어낼 수 있을까(氣質變化)하는 것이 성리학의 궁극적인 과제가 된다. 여기에 바로 수양 즉 치유(修養)의 당위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