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철학의 형성과 사상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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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철학의 형성과 사상의 심화- 41 인간의 양면성과 마음의 양면성 덧글 0 | 조회 378 | 2016-09-08 16:14:29
학전  

유가철학의 형성과 사상의 심화- 41 인간의 양면성과 마음의 양면성


 2. 마음의 양면성-2


 맹자는 생물학적 본능과 도덕적 본성을 감각기관(耳目之官)가 반성기관(心之官)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귀와 눈 등의 감각기관은 사고력이 없으므로 외부의 사물에 가리어 막히게 되고 외부의 사물과 접촉하면 거기에 이끌림을 당한다. 그러나 마음의 반성기관은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사고하면 합당함을 얻고 사고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이것이 곧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능력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한 마음의 양면성은 사고하는(反省) 마음과 사고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고하는 마음은 주체성을 확고하게 갖고(求放心) 외부의 사물에 끌려 다니기만 하는 본능을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합당함을 얻는 마음이다. 반대로 사고하지 않은 마음은 오히려 본능에 압도되고 가려저서 주체성을 잃어버린 마음이다. 본성의 자리에 본능적인 욕심이 꽉차있는 마음 없는 마음 곧 인간의 본래적 마음이 아닌 마음이다. 맹자는 이러한 마음을 잃어버린 마음(放心)이라고 했다.


 맹자는 본성과 본능을 설명하면서 입이 멋을 추구하고 눈이 아름다운 색을 추구하는  등의 본능은 본성이기는 하지만 운명적인 것이 개제되어 있으므로 군자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짊(仁)이 부모 자식 사이에서 베풀어지고 의로움(義)이 통치자의 백성들 사이에서 지켜지는 등의 본성은 운명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에 본성이 개재되어 있으므로 군자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운명은 외재적인 힘과 작용에 의하여 결정되어진 것이다. 본능은 외부에 끌려 다닐 뿐 스스로가 통제하고 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이긴 하여도 인간을 결정하는 주체성으로서의 본성이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본성은 마음의 내재적인 능력과 작용에 의하여 결정되어진다. 따라서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본성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인 마음의 능력이다. 그렇게 때문에 어짊과 의로움 등을 결정하는 것은 본성인 것이며 운명적인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잃어버린 본성을 구하는 공부가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는데 있으며,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는 공부는 욕심을 줄이는데 있다고 하였다. 유기철학에서는 마음의 현상을 순수도덕정감과 사욕정감으로 구분한다. 순수도덕정감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어짊 의로움 예의로움 지혜로움(仁義禮智)을 내용으로 하는 덕성이 현상으로 드러남 측은 수오 사양 시비 등의 마음상태이다. 사욕정감은 타고난 덕성이 사사로움 욕망에 가리어 현상으로 드러난 치우침 방탕함 간사함 회피함(詖淫邪遁) 등의 부덕한 행위를 초래하는 마음상태이다. 그러므로 순수도덕정감으로 사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고, 사욕정감으로 사는 사람은 병든 사람이다.


 이와 같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인의예지의 절대선(本然之性) 한쪽방면에서 설명하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로 성악설 등의 논쟁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맹자가 성선을 말할 때 단지 성의 본원을 말했을 뿐 기지지성(氣質之性)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악설, 선악혼용설 등과 쟁론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후 장재(張載)와 정씨형제가 기질지성을 말하여 다른 모든 주장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전통적인 마음에 관한 이론은 성리학(性理學)에 이르러 더욱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되기에 이른다. 성리학의  대전제는 학문의 명칭 그대로 본성이 곧 이치이다(性卽理)는 명제이다. 리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이치라면 본성은 각 개체에 내재된 현상적인 이치이다. 이치는 물질적인 질료를 본성은 구체적인 사물들을 상대해서 설명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리학의 이론 체계는 이와 기의 형이상학적인 본체론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심성문제도 역시 리기론의 체계위에서 이해된다.


 주희는 인간이 태어난 까닭은 리와 기가 결합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마음도 음양(陰陽)의 기가 교감하여 몸에 태어나면 거기에 리가 부착한 것이므로 인간이 언어 동작 사려 영위 등을 하는 것은 모두가 기이고 거기에 리가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이치가 담겨 있는 물이다. 다시 말하면 본성이 깃들어 있는 집이다. 주희가 본성을 바로 마음이 갖추고 있는 이치이고 마음는 바로 선성의 이치가 깃들어 있는 장소라고 말하였다. 이 언급에서도 보면 인간이 마음 역시 리와 기의 결합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몸 속의 본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몸은 기이고 본성은 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본래 상태가 허령(虛靈)하여 조금도 깨닫지 못한 것이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맑고 형통한 순수한 때문이라 하여 마음을 특별히 ‘기의 령’ 또는 ‘기의 정상(精爽)‘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갖는 일차적인 양면성이다.


 주희는 마음을 본성과 정감의 관계에서 말 할 때 본성은 마음의 이치이고 정감은 마음의 움직임이며, 마음은 본성과 정감의 주인이라고 하였다. 본성과 정감은 마음의 이치와작용이다.  이 말은 마음의 본질은 본성이고 다음의 현상은 정감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주희는 또 말하기를  본성과 정감과 마음에 대하여 맹자와 횡거가 잘 말했다. 어짊은 본성이고 측은은 정감이니 마음에서 생기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마음은 본성과 정감을 통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본성은 이치로서 구체적인 사물의 본질이므로 선하지 않음이 없다. 정감은 구체적인 세계 속의 현상이므로 반드시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본성도기 속의 리이므로 마음 안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은 본성과 정감을 통괄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본성과 절감을 통괄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마음은 본성과 정감을 통괄한다고 할 때 통(統)의 개념을 겸(兼)과 같은 것이라 하였으나 ‘겸 한다’는  의미이다. 둘째로 통은 주재(主宰)이다. 마치 백만 군사를 통솔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으니 ‘주재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본성과 정감을 겸한다는 의미이고 작용 방면에는 마음이 정감의 미발(未發)과 이발(已發) 그리고 이발시의 과불급(過不及)을 통제한다는 의미이다. 주희는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온전한 전체를 가리켜 말 한 것은 본성이고, 이미 드러나서 오묘하게 작용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은 정감이라고 하였다. 마음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 본성과 이미 드러난 부분인 정감이 그것이다. 이 둘을 주재하는 것이 마음이다. 주희는 이것을 마음의 체(體)와 용(用)이라고 했다. 이 또한 마음이 갖는 양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