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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살이의 전형- 유희춘·송덕봉 부부 덧글 0 | 조회 1,497 | 2015-01-21 16:25:01
태송  

처가살이의 전형- 유희춘·송덕봉 부부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고마운 줄 알라”

선조의 경연(經筵: 임금이 하루 세 번 신하들과 유학을 공부하고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 교사를 맡기도 하고 유학자로서 존경받는 인물 미암 유희춘(1513~1577)과 부인 송덕봉(1521~1578) 사이에 오고간 뜻밖의 편지가 있다. 유희춘이 홍문관 부제학이 되어 서울에 머물면서 넉달 동안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독숙하였다며 부인에게 자랑삼아 편지를 쓴 것이다.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알라.” 즉 “고마운 줄 알라”는 내용이다. 이에 부인 송덕봉이 장문의 답장을 보냈는데, 지금 보아도 재치가 넘친다.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본래 성현의 가르침이지, 어찌 아녀자를 위해 힘쓴 일이겠소. 마음이 이미 정해져 물욕에 가리워지지 않으면 잡념이 없는 것이니 어찌 규중 아녀자에게 보은을 바라시오. 서너달 홀로 지낸 것을 가지고 고결하다고 하며 덕을 베푼 양 생색을 낸다면 당신도 분명 담담하거나 무심한 사람이 아니오.

화려한 유혹을 끊어버리고 안으로 사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찌 꼭 편지를 써서 자신의 공을 자랑해야만 알 일이겠소? 곁에 나를 알아주는 벗이 있고 아래로는 권속 노비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공론이 저절로 퍼질 것이니, 굳이 애써서 편지를 보낼 것도 없지요.

이런 걸 보면 당신은 아마도 겉으로 인의를 베풀고는 얼른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하오. 제가 가만히 살펴봄에 의심스러움이 한량이 없소.“




원래 취지는 ‘홀로 벼슬하며 당신만 생각한다’며 모처럼 애정어린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부인 송덕봉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한방 먹인다. 지난날 자신이 해온 일을 열거하며 누구의 공이 더 큰지 비교해 보라고 한다.




“옛날 당신 어머님이 상을 당했을 때 사방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고 당신은 만리밖에 귀양가 있어 그저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통곡만 했소. 그래도 나는 지극 정성으로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고 주변 사람들도 ‘묘를 쓰고 제사지냄이 친자식도 이보다 더할 순 없다’고 하였소. 어머니 삼년상을 마치고 또 만리길을 나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당신을 찾아갔는데, 누가 이 일을 모르겠소. 내가 당신한테 이렇게 지성을 다했으니, 이것이 바로 잊기 어려운 일이오.”




그러면서 “당신의 나이가 60이 가까우니 독숙하는 것은 당신 건강을 위해 이로운 것이지 나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며 남편을 훈계한다. 마지막으로 “원컨대, 이제 잡념을 끊고 기운을 보양하여 수명을 늘리도록 하시오. 이것이 내가 밤낮으로 바라는 바이오.”하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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