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橘山尊兄 太師閣下-李鴻章. -1 덧글 0 | 조회 950 | 2016-01-06 09:30:06
학전  

橘山尊兄 太師閣下-李鴻章. -보내온 글

귤산존형 태사각하.


이 글은 淸國北洋大臣 李鴻章(1823~1901)이 朝鮮領相 橘山李裕元에게 보낸 書信 (1910년)

귤산(橘山:영의정 이유원의 호)존형(尊兄)! 태사(太師:영의정)각하(閣下)!

지난 두 달 동안 왕래(往來)한 편지(便紙)를 정월(正月)에야 정리(整理)하면서 지난해 12월 15일에 보내주신 혜서(惠書:편지의 높임 말)를 접(接)하게 되었습니다.

존형(尊兄)께서는 국제간(國際間)에 외교(外交)라고 하는 것은 반복(反覆)해서 그 득실(得失)을 미루어 고구(考究)하고 정세(情勢)를 해부(解剖)하여 분석(分析)하시며 충성(忠誠)스런 모사(謀事)와 훌륭한 계획(計劃)에 충심(衷心)으로 감복(感服)해 마지않습니다.

​말씀하신 내용(內容) 가운데 수령(修齡:장수하도록 진심으로 딲음)을 다스리는 이양(頤養. 養生)의 방법(方法)을 견주어 살펴보면 정치인(政治人)은 평장대정(平章大政:堂⦁宋代의 宰相官名)과 같이 적(敵)의 침략(侵略)을 막아내어 나라를 굳게 지키며 그리하여 국민(國民)이 함께 좋아하고 송축(頌祝)하기에 이른다면 그것이 우리네 공직자(公職者)의 장수비결(長壽秘訣)이 아니겠소이까?

일본(日本)과 귀국(貴國)이 교린(交隣)을 맺는 고래(古來)의 여러 절차를 시사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는바 왜인(倭人)의 성정(性情)이 야생마(野生馬)같아 사악(邪惡)하며 교활(狡猾)한데다가 욕심(慾心)가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국(貴國)에서 한번 정(定)한 방침(方針)을 바꾸지 않고 그때그때 저들의 행태(行態)에 알맞게 대응(對應)하고 있는 것은 그 이번의 계책(計策)보다 진일보(進一步)한 것입니다.

작년에 주왜(駐倭) 공사(公使)로 있는 하시강(何侍講)이 글을 보내 왔는데 왜인(倭人)들이 여러 차례(次例) 한국(韓國)을 소개해 달라고 진정(陳情)하고 귀국(貴國)과의 진심(眞心)으로 화목(和睦)하게 지내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쪽이 서로 속을 염려가 없다면 비인(鄙人: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말)의 생각으로는 예(禮)부터의 교제(交際)의 도(道)를 지키면서 마땅하게 응대(應待)하면 원수(怨讐)의 사이라도 돕는 처지(處地)가 될 것이고 마땅히 대접(待接)을 하지 못하면 과거(過去)에 서로 돕던 사이라 하여도 원수(怨讐)지간이 될 것입니다.

왜인(倭人)의 말이 반듯이 성의(誠意) 가운데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기미를 보이면서 이 쪽의 바라는바 대로 선도(先導)하고 다툴만한 단서(但書)를 미리 막아 간다면 두 나라가 서로 오래도록 집목(輯睦:서로 화목함)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일찍이 제가 부친 글속에서 감히 권한 내용입니다.주의하실 일은 저들이 무엇인가의 구실(口實)로 핑계 댈 때까지 의심(疑心)하고 싫어하는 기색(氣色)을 먼저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사이 일본이 행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모두 사리(事理)에 어긋나고 잘못되어 있어서 도무지 속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무슨 일에 있어서나 그저 친밀(親密)하게 하지 말고 대충의 줄거리나 설명(說明)하는 정도(程度)로 해서 나중에 터질지도 모르는 사고(事故)를 일찍이 방지(防止)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일본(日本)이 비년(比年:근년) 이래 서양(西洋)의 법을 우러러 숭상(崇尙)한 나머지 온갖 일의 실마리를 서양식(西洋式)으로 꾸려가고 있으며 스스로 그 것을 부강(富强)하게 하는 방법(方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가다가 결국(結局) 재정(財政)이 텅 비게 되고 국채(國債:나라 빚)가 쌓이게 되니까 부득불(不得不) 전쟁(戰爭)이나 분쟁(分爭)을 일으켜서 바야흐로 판도(版圖)를 넓힌 다음에 그 비용(費用)을 빼앗는 나라로 하여금 대신 갚게 하고 있습니다. 저들 왜국(倭國)의 사나운 집의 강우(彊宇)가 우리와 서로 바라보이는 곳이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유구(琉球)는 수백년(數百年)을 이어온 옛 나라입니다 만은 아직 개항(開港)하지 않은 것이 무슨 죄(罪)가 되는지 일본이 금년 봄에 갑자기 병선(兵船)을 보내어 임금을 구속(拘束)한 다음 왕위(王位)에서 물러가게 하고 그 강토(疆土)를 병탄(倂呑)해버린 것입니다. 중국(中國)과 귀국(貴國)의 경우(境遇)에 있어서도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엿보고 있노라면 언제 해(害)를 입을지 그 장래(將來)를 보장(保障)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는 공통(共通)된다고 할 것입니다.

중국(中國)의 병력(兵力)이나 군량(軍糧)은 일본(日本)의 10배(倍)가 됩니다마는 스스로 헤아려서 오히려 더 증강(增强)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귀국(貴國)의 입장(立場)으로 대신(代身)하여 시험(試驗)해 본다고 하면 아무리 잘 살펴보아도 주저(躊躇)해 집니다. 이 때에 이르러 중국(中國)의 경우(境遇)를 귀국(貴國)에 알맞게 본(本)뜨려면 비밀리에 무력을 딲고 군량미(軍糧米)와 군비(軍備)를 갖추며 삼가 굳게 지키되 마땅히 소리도 내지 말고 기색(氣色)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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